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구 갑(대전광역시) (문단 편집)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4> [[서구 갑(대전)|{{{#000 {{{+1 '''서구 갑'''}}}}}}]][br]{{{#000 복수동, 도마1동, 도마2동, 정림동, 변동, 괴정동,[br]가장동, 내동, 가수원동, 관저1동, 관저2동, 기성동}}}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이영규|{{{#000,#ffffff 이영규}}}]](李暎珪) || 21,838 || 2위 || || [include(틀:한나라당)] || 22.97% || 낙선 || ||<|2> {{{#ffffff {{{+5 '''2'''}}}}}} || 이강철(李康喆) || 3,252 || 5위 || || [include(틀:새천년민주당)] || 3.42% || 낙선 || ||<|2> {{{#000000 {{{+5 '''3'''}}}}}} || '''[[박병석|{{{#000,#ffffff 박병석}}}]](朴炳錫)''' || '''49,194''' || '''1위''' || || [include(틀:열린우리당)] || '''51.75%''' || '''당선''' || ||<|2> {{{#ffffff {{{+5 '''4'''}}}}}} || [[한기온|{{{#000,#fff 한기온}}}]](韓基溫)[*A 둔산의 네임드 [[입시학원]]인 [[제일학원]] 이사장이다.] || 14,768 || 3위 || || [include(틀:자유민주연합)] || 15.53% || 낙선 || ||<|2> {{{#ffffff {{{+5 '''5'''}}}}}} || 김양호(金良鎬) || 4,836 || 4위 || || [include(틀:민주노동당)] || 5.08% || 낙선 || ||<|2> {{{#ffffff {{{+5 '''6'''}}}}}} || 박진봉(朴鎭奉) || 376 || 7위 || || [include(틀:무소속)] || 0.39% || 낙선 || ||<|2> {{{#ffffff {{{+5 '''7'''}}}}}} || 한흥수(韓興洙) || 781 || 6위 || || [include(틀:무소속)] || 0.82%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165,276 ||<|3> '''투표율'''[br]58.01% || || '''투표 수''' || 95,870 || || '''무효표 수''' || 825 || ||<-6> {{{#000 '''17대 총선 대전 서구 갑 개표 결과'''}}} || || '''정당''' ||<:> [include(틀:한나라당)] ||<:> [include(틀:열린우리당)] ||<:> [include(틀:자유민주연합)] ||<|2> 격차[br](1위/2위) ||<|2> 투표율[br](선거인/표수) || || '''후보''' ||<:> [[이영규|{{{#FFFFFF '''이영규'''}}}]] ||<:> [[박병석|{{{#000000 '''박병석'''}}}]] ||<:> [[한기온|{{{#FFFFFF '''한기온'''}}}]] || || '''득표수[br](득표율)''' ||<:> '''21,838 [br] (22.97%)''' ||<:> {{{#000000 '''49,194 [br] (51.75%)'''}}} ||<:> '''14,768 [br] (15.53%)''' || '''- 27,356 [br] (▼28.78)''' || '''58.01%''' || || '''복수동''' ||<:> 22.58% ||<:> {{{#ffd918 51.88%}}} ||<:> 16.81% ||<:> ▼29.30 ||<:> 61.49 || || '''도마1동''' ||<:> 21.64% ||<:> {{{#ffd918 49.28%}}} ||<:> 19.25% ||<:> ▼27.64 ||<:> 51.65 || || '''도마2동''' ||<:> 22.85% ||<:> {{{#ffd918 50.65%}}} ||<:> 17.15% ||<:> ▼27.80 ||<:> 55.61 || || '''정림동''' ||<:> 22.08% ||<:> {{{#ffd918 53.05%}}} ||<:> 14.71% ||<:>▼30.97 ||<:> 61.13 || || '''변동''' ||<:> 22.36% ||<:> {{{#ffd918 50.04%}}} ||<:> 17.43% ||<:> ▼27.68 ||<:> 52.43 || || '''괴정동''' ||<:> 23.31% ||<:> {{{#ffd918 51.34%}}} ||<:> 14.98% ||<:> ▼28.03 ||<:> 51.63 || || '''가장동''' ||<:> '''29.24%''' ||<:> {{{#ffd918 48.40%}}} ||<:> 14.59% ||<:> ▼19.16 ||<:> 60.89 || || '''내동''' ||<:> 28.17% ||<:> {{{#ffd918 48.52%}}} ||<:> 14.02% ||<:> ▼20.35 ||<:> 57.42 || || '''가수원동''' ||<:> 21.08% ||<:> {{{#ffd918 51.51%}}} ||<:> 17.99% ||<:> ▼30.43 ||<:> 55.45 || || '''관저동''' ||<:> 21.83% ||<:> {{{#ffd918 '''57.24%'''}}} ||<:> 11.97% ||<:> ▼'''35.41''' ||<:> 62.34 || || '''기성동''' ||<:> 19.42% ||<:> {{{#ffd918 50.31%}}} ||<:> '''23.41%''' ||<:> ▼30.89 ||<:> 58.45 || || '''후보''' ||<:> [[이영규|{{{#008cd7 '''이영규'''}}}]] ||<:> [[박병석|{{{#ffd918 '''박병석'''}}}]] ||<:> [[한기온|{{{#1B5B40 '''한기온'''}}}]] ||<-2> 격차 || || '''부재자투표''' ||<:> 18.45% ||<:> {{{#ffd918 '''49.48%'''}}} ||<:> 13.12% ||<-2> ▼31.03 || '''[[박병석]] VS [[이영규]] Round 1''' [[열린우리당]]에서는 일찌감치 현역 의원인 [[박병석]] 후보가 단수공천을 받아 재선에 도전했다. [[한나라당]]에선 만 44세의 변호사 [[이영규]] 후보를 공천해 내보냈다. 이로써 16년 간을 이어온 질긴 [[악연]]인 [[박병석]] VS [[이영규]] 라인업의 서막이 올랐다. 아마 이 두 사람 모두 이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질긴 악연을 이어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 밖에 [[새천년민주당]]에선 시의원을 지낸 이강철 후보를 공천해 내보냈고 [[자민련]]에서도 [[제일학원]] 이사장인 [[한기온]] 후보를 공천해 내보냈다. [[민주노동당]]에선 민주노동당권영길대통령후보대전집행위원장을 지낸 김양호 후보가 나섰고 [[한나라당]] 공천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진봉 후보와 중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무소속 한흥수 후보까지 총 7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그런데 선거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역풍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이 그 반사이익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거기다 보수 표심마저 한나라당과 자민련으로 양분되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박병석 후보에게 유리해졌다. 결국 개표 결과 예상대로 현역 의원 박병석 후보가 보수 표심 분열과 관계없이 51.7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자력으로 지역구 수성에 성공했다. 보수 후보인 한나라당 이영규 후보는 22.97%, 자민련 한기온 후보 또한 15.53% 득표에 그치며 각각 2위, 3위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박병석 후보는 모든 동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심지어 두 보수 후보인 이영규 후보와 한기온 후보의 득표 수 합을 모두 합쳐도 도마 1동, 가장동, 내동 3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하늘을 찌르는데다 보수 표심마저 분열되어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보수 표심이 분열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박병석 후보가 과반을 넘는 득표율을 달성했기에 반드시 그들이 이길 것이라고 보긴 힘들어보인다. 덧붙여서 당시 총선에서 이곳을 포함하여 당시 탄핵 소추 역풍에 힘입어 대전의 6개 선거구 모두 [[열린우리당]]이 휩쓸어버렸다. 이렇게 박병석 후보는 이영규 후보와의 첫 번째 대결에서 가볍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들이 이 이후로도 4번이나 더 재회하게 될 것이라고는 이 때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 모두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번번이 [[박병석|한 사람]]의 일방적인 승리로 흘러갈 것이라고는 더더욱 알지 못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